-

돌봄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복지의 방향
한국 사회는 지금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출산율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평균 수명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인구의 연령 구조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형태, 사회적 관계, 그리고 “돌봄”의 의미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돌봄이 가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상이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자녀가 나이든 부모를 보살피는 관계.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훨씬 복잡하다.
핵가족화, 맞벌이 증가, 지역 이동의 확산으로 인해 이전처럼 “가족 안의 돌봄”만으로는 더 이상 사회의 돌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돌봄, 즉 세대 간 돌봄(Intergenerational Care)이라는 개념을 마주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세대 간 돌봄의 개념과 배경, 가족복지의 변화,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1. 세대 간 돌봄의 개념과 등장 배경
세대 간 돌봄이란, 단순히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돌보는 관계”를 넘어선다.
이는 노인과 청년, 부모와 자녀, 조부모와 손주 등 세대 간의 상호 지원, 정서적 교류, 상호 학습이 공존하는 돌봄 구조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2000년대 들어 사회복지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유럽과 일본에서 “세대 통합 복지”의 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 배경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회 변화가 있다.
첫째, 가족 구조의 변화이다.
과거의 대가족 체계가 무너지고 핵가족, 1인 가구가 일반화되면서 가족 내 돌봄의 지속성이 약화되었다.
둘째,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이다.
전통적으로 가족 내 돌봄을 담당하던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돌봄의 공백이 커졌다.
셋째, 세대 간 가치관의 변화이다.
예전에는 부모 봉양이 자녀의 의무였지만, 오늘날의 가족관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중시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가족 중심의 돌봄”은 점점 한계를 드러냈고, 대신 “세대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적 관계망”의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2. 전통적 가족복지와 현대의 가족복지
전통적 가족복지는 ‘보호 중심적’이었다.
가정이 곧 복지의 기본 단위였으며, 부모-자녀 간의 부양 관계가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
가족이 더 이상 완전한 복지 단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가족복지는 국가, 지역사회,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적 구조로 확장되었다.
즉, 가족의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부의 복지 시스템이 그 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가족복지의 변화는 다음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 가족 중심에서 사회 중심으로의 이동 - 과거에는 가족이 모든 돌봄 책임을 졌다면, 이제는 지역사회가 돌봄을 분담한다.
- 수동적 부양에서 상호 돌봄으로의 전환 -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수직적 부양 관계가 “세대가 함께 돕는다”는 상호적 관계로 바뀌고 있다.
- 물질적 지원에서 정서적·관계적 복지로 확장 - 단순히 경제적 지원을 넘어, 정서적 교류와 삶의 만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복지가 진화하고 있다.
3. 세대 간 돌봄의 실제적 형태
세대 간 돌봄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조부모-손주 돌봄(Grandparenting)
- 조부모가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돌보는 형태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보편화된 모습이다.
- 이 과정에서 조부모는 ‘보조양육자’가 아니라, 가족 관계의 정서적 연결자 역할을 한다.
역돌봄(Reverse Care)
- 청년 세대가 노부모나 조부모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형태이다.
- 이는 단순한 부양이 아니라, 가족의 기억과 감정을 이어주는 상호 관계다.
세대 간 프로그램 참여
- 지역 복지관이나 학교에서는 노인과 아이가 함께 활동하는 세대 통합 프로그램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 예를 들어, 독서 멘토링, 전통놀이 체험, 텃밭 가꾸기 등이 있다.
세대 통합형 주거 모델
- 노인과 청년이 한 건물에 살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세대 공존형 주거’가 등장하고 있다.
- 네덜란드, 일본, 한국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4. 세대 간 돌봄이 사회에 주는 의미
세대 간 돌봄은 단지 ‘복지의 한 형태’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연대의 회복을 의미한다.
세대 간 이해 증진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만남을 통해 가치관의 차이를 좁히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강화
세대 간 돌봄은 지역 공동체의 연결을 강화한다.
이는 복지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사회적 안정성을 높인다.
정서적 웰빙(Emotional Well-being)
돌봄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관계 속에서 정서적 만족을 경험한다.
지속가능한 복지체계 구축
공공복지의 부담을 완화하고, 세대 간 협력을 통한 자생적 복지모델을 만든다.
5. 한국 사회의 세대 간 돌봄 현황
한국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이미 돌봄의 구조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조부모 돌봄의 확대
-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의 35% 이상이 조부모의 손에서 양육되고 있다.
- 이는 가정 내 세대 간 돌봄의 대표적인 형태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Community Care)
- 정부는 2018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추진 중이다.
- 노인, 장애인, 아동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지역에서 함께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세대 통합 프로그램의 다양화
- 복지관, 학교, 도서관, 마을공동체 등에서 세대 교류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다.
- 예: 세대공감 봉사활동, 실버멘토링, 할머니 이야기 수업 등.
6. 세대 간 돌봄이 가져오는 변화 — 가족복지의 재정의
세대 간 돌봄은 가족복지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전에는 복지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었다면, 이제 복지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관계를 만드는 일”이 되었다.
가족의 경계가 확장된다
가족은 더 이상 혈연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이웃, 친구, 지역 공동체가 모두 ‘돌봄의 가족’이 된다.
복지의 주체가 다양화된다
가족뿐 아니라 시민단체, 지방정부, 민간기업이 복지 실천의 주체로 함께 나선다.
관계 중심의 복지로 변화한다
복지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된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곧 복지의 실천이 된다.
7. 세대 간 돌봄의 한계와 과제
물론 세대 간 돌봄이 이상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 돌봄의 부담이 특정 세대에 집중 - 조부모 돌봄의 경우, 노인의 체력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과중한 책임이 될 수 있다.
- 경제적 불평등의 격차 - 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이나 주거 모델이 일부 계층에만 국한되는 문제도 있다.
- 제도적 지원의 미비 - 법적 제도나 행정 지원이 충분하지 않아 세대 간 돌봄이 ‘개인적 노력’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 세대 간 가치 충돌 - 서로 다른 세대 간의 문화적 차이와 의사소통 문제로 관계 형성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8. 앞으로의 방향 — ‘세대 공존 복지’로
세대 간 돌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가 세대 공존 복지(Solidarity Welfare)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책적 지원 강화
- 세대 통합 복지관, 공동활동 공간, 지역 연계 사업 확대가 필요하다.
복지 인프라의 세대 통합화
- 노인복지, 아동복지, 가족복지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 돌봄 체계’로 운영해야 한다.
교육과 인식 개선
- 세대 간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이 중요하다.
- 젊은 세대에게는 공감 능력을, 노년 세대에게는 수용의 태도를 길러야 한다.
지역 중심의 공동체 복원
- 지역 주민이 함께 돌봄의 주체가 되는 ‘마을 복지’ 모델을 확대해야 한다.
9. 결론 — 돌봄은 인간의 본성이다
세대 간 돌봄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관계 회복이다.
돌봄은 의무가 아니라 관계의 표현이며,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인간다운 행위다.
지금 우리는 돌봄의 사회화를 넘어, 세대가 서로의 삶에 참여하고, 배움과 돌봄을 나누는 공존의 복지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돌봄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젊다고,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구분되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돌보는 사회.
그런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한 복지사회”이며, 우리 모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노인복지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고령사회에서의 노인 리더십과 사회참여 (0) 2026.02.12 디지털 포용사회와 시니어 리터러시(Senior Literacy) (0) 2026.02.12 고령사회와 지속가능발전(SDGs) — 노인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 미래의 복지는 ‘지속가능성’과 ‘포용성’으로 완성된다 (0) 2026.02.11 노년기 정신건강과 마음돌봄 -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여전히 성장한다 (0) 2026.02.11 고령친화도시(Age-Friendly City)와 노인복지의 미래 나이 들어도 살기 좋은 도시, 지속 가능한 복지사회의 길 (0) 2026.02.10
